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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찌질하다의 반대말
이 뭔가. 특별하다? 잘나간다? 바지통 6반으로 줄이고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 스타일? 아니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 박정민<쓸 만한 인간>

‘찌질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지질하다’라는 형용사가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정의되어 있다. 내 경험상 이 표현은 흔히 사물보다 사람에게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 지질’이라고 쓰지만 발음할 때는 ‘찌질’이라고 된소리로 발음해서 일부러 보잘것없는 느낌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작가는 ‘찌질하다’의 반대말을 ‘찌질했었다’라는 과거형으로 말한다. (이런 특유의 생각을 비트는 유머가 작품 전체에 깔려 있다.) 자연스럽게 나의 찌질했던 ‘과거’는 언제였을까 생각하게 됐는데 잠깐만 떠올려봐도 부끄러운 순간들이 너무 많이 지나간다. 그 찌질함의 역사를 지금도 써 내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수많은 방면에서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것들 투성이니까 말이다.

 

작가는 애매하고 과도기적인 인간을 ‘찌질이’라고 부르고 있다. 작가 나름의 새로운 정의를 내린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찌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의 부족함으로 나는 물론 주변에 피해를 주는 인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유년시절의 지질함은 어린 나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는 이해를 받을 수 있지만, 성인의 찌질함은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리고 내 경우에 그 지질함은 ‘술’ 때문에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역 후 대학에 복학한 나는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당시 한창 지방으로 세를 확장하던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생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의 업무는 크게 3가지인데, 첫째는 티켓 발권, 둘째는 매점운영, 셋째 티켓 검표 및 상영관 청소였다. 아르바이트는 내 적성에 맞았고 모든 업무가 즐거웠다. 특히 같이 일을 하던 동료 아르바이트생들이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극장 밖에서도 꽤 자주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친구가 되고 그랬다. 어느 날, 그들과 또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자취방에서 늦잠을 잔 후 다시 극장에 일하러 갈 시간이 되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날 업무는 티켓 검표였고 맡은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었다. 그 날은 신입 2명이 업무를 익히기 위해 내 옆에 붙어 일을 배우던 중이었다. 술이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로 관람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해야 했지만 여유롭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메모장에 방송 멘트를 적었다.

‘잠시 후 10시 30분에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을 관람하실 분들은 지금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심호흡을 하고 그대로 읽으면 됐다. 아르바이트 1년차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보여주겠어.

“잠시 후 10시 30분에 바스터즈를 관람하실 거친녀석들은 지금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망했다. 혀가 꼬여버렸다. 신입들은 아침부터 술 냄새 풍기고 온 녀석이 멘트도 엉망으로 하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방송을 듣고 입장하시던 한 중년 남성 관객은 나를 지나치며 “거친 녀석들?” 하며 코웃음을 쳤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찌질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찌질함을 잊기 위해 그날도 술잔을 기울였다.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크지만 나이 먹고 가지는 술자리에서 점점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자리를 피하고 있다. 또 찌질해지기 싫다. 시쳇말로 흑역사를 만드는 순간이 곧 찌질이가 되는 순간인 것 같다. 흑역사를 반복하는 것만큼 찌질한 것도 없다.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정말 술을 멀리해야만 한다.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보통사람들의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은 꼭 다시 찾게 되는 것 같다. 책, 오디오북, e북까지 종류별로 구입해서 시시 때때로 꺼내 보기도 한다. (오디오북은 작가가 직접 낭독한다.)

나도 언젠가는 내 글을 통해서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선 나부터.

이번 글쓰기는 나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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