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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거리 47Km
5번 체크포인트인 운조루에서 어머니의 응원을 받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 그 상태에서 햄버거로 배를 채웠다. 우적우적 빵과 고기를 씹었다. 꿀맛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다가는 몸이 걷기 모드에서 해제될 것 같았다. 몸은 지쳐있었지만 빨리 다시 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하지만 팀원들보다 먼저 도착한 탓에 나머지 3명을 이곳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잠시 후 구급차 한대가 들어왔고 배우 이제훈이 침대에 실려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약 50Km 지점에서 안타깝게도 포기 선언을 했다. 완주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과 피곤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팀원들은 내가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 몸은 점점 더 편안함을 찾고 있었다. 근처 보도블록 요석에 자리를 깔고 두 번째 햄버거를 먹고 있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동료들이 나타났다. 모두 이제훈처럼 지쳐있었다. 남은 거리는 47Km, 그리고 시간은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오후 7시 30분이 종료시점이었기에 아직은 여유 있었지만 몸이 점점 풀려버리고 있었다.
기절
5번 포인트에 뒤늦게 도착한 3명의 동료들이 정비를 하고 영양을 보충한 후 새벽 1시가 되어서야 6번 포인트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5~6번 포인트 사이에 임시숙소가 있었다. 60Km 지점에 있는 실내체육관에서 잠깐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실내체육관이 아니라 당장 길바닥에 누워도 딥슬립에 빠질 수 있는 상태였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발바닥서 불이 났지만 그래도 너무 졸렸다. 평지 7Km를 비몽사몽 걸어서 드디어 체육관에 도착했고 새벽 4시였다. 우리는 30분만 잠을 자고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그것보다 더 자면 몸이 정말 풀어져서 다시 걷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네 명이 나란히 딱딱한 체육관 바닥에 자리를 잡아 누웠고 그대로 2시간을 기절했다.
'망했다.'는 생각과 함께 동료들을 흔들어 깨웠다. 빨리 6번 포인트로 가야 했다. 절반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체육관을 나섰다.
지금부터는 정신력
체육관에서 6번 포인트(사성암 주차장)에 가는 길은 고도변화가 없는 완벽한 평지다. 아침 시간이었고 섬진강을 따라서 걸어가는 그 길은 지금까지 걸었던 어떤 코스보다 아름다웠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강을 따라 피어오른 옅은 안개가 신비로운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6번 포인트를 지나 사성암이 자리 잡은 오산(烏山)을 오르는 코스가 시작됐다. 전날 노고단도 올랐는데 이 정도쯤은 가뿐하게 올랐어야 했다. 하지만 오산은 지리산만큼 경사가 급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들 여기저기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발바닥, 무릎, 발목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정신력과 자양강장제의 힘으로 걸어야 했다. 오산 정상을 찍고 7번 포인트로 내려올 때는 너무 졸려서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가 사람으로 보이고 돌멩이가 쥐로보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10분 동안 졸기도 했다. 제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죽음의 임도
7번 포인트(마고실)부터 종착지까지 이제 26Km 남았다. 그런데 벌써 오후 2시였다. 남은 시간은 5시간 30분. 우리는 회의를 했다. 한 시간 동안 5Km씩이나 가야 하는데 몸이 버틸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이미 3/4 지점까지 왔고 여기서 포기하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시간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갈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속도를 내서 가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중도포기를 운운하는 친구에게 화가 나서 '닥치고 걷자'는 심정이었다. 이제 8번 포인트부터 도착지점 전에 있는 9번 포인트까지는 도로와 임도를 걷는 구간이었다. 그런데 이 임도가 완만한 경사로 계속해서 높아지는 구간이었다. 지리산이나 오산처럼 대놓고 급격한 경사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서서히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는 임도는 서서히 숨통을 조여왔다. 이 죽일 놈의 임도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사실 평소에는 신경도 안쓰러 길의 경사각이 그때는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9번 포인트에 다가갈수록 내리막길이 이어졌는데 이 때는 팀으로 걷는 사람들은 거의 볼 수 없었다. 1명이나 2명씩 팀들이 찢어졌거나 중도 포기한 팀원들을 뺀 나머지 인원들만 걷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는 네 명이서 아직 잘 버티고 있었다.
11분을 남겨놓고
9번 포인트에서 보건소 직원이 나눠주던 삶은 달걀을 잊을 수 없다. 세상 퍽퍽한 달걀을 먹다가 구토가 나와서 다 뱉어버렸다. 물 말고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38시간이 거의 다 흘러서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딱 5Km 남았다. 우리는 어쩌면 턱걸이로 딱 맞게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멀리 마지막 FINISH 깃발이 보이자 이 여정의 끝이 보인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마지막 11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도착! 완주 기념 메달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여정을 자축했다. 그리고 향후 10년간 다시는 등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만나면 그 때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 중에는 그 이후의 모든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우리가 아직도 6년 전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산이 준 엄청난 자기효능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진한 1박 2일을 보냈다. 앞으로 이것보다 더 험한 길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다시 기회가 되면 트레일워커에 도전해보고 싶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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