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도로변을 20분 정도 산책했다. 아직 초겨울이라 후드티에 적당한 두께의 조끼만 걸치고도 걷기 좋은 날씨였다. 산책을 하게 된 계기는 자청의 라는 책을 읽다가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자청은 책에서 '걷기는 소재를 만들기에 최적의 행동'이 걷기라고 하면서, 두뇌가 모든 정보를 창의적으로 재조합하는 '몽상모드'로 전환되는 걷기를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칸트까지 당대 위대한 철학자들은 걷기를 통해 창의적 사고를 발휘했다는 칼럼까지 덧붙이고 있다. 이렇게 주장과 근거까지 탄탄한 글을 읽고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은 충전기에 꽂아둔 채로, 후디를 뒤집어 쓰고 문 밖으로 나섰다. 몇 시간동안 집안에만 있었더니, 바람이 상쾌했다.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났다. ..
내가 어떤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고 '쉬운 것'이다. '쉬운 일'은 고착화되고 동시에 실수할 확률도 높아진다. 내가 어려워 하는 일, 거부감이 드는 일을 과감히 (그리고 묵묵히, 오랜 시간) 수행하는 것이 시간이 지나 가치있는 '무엇'이 될 확률이 높다. 한 유투브 채널에서 배우 차승원이 한 말을 내 나름대로 (기억나는대로) 적어봤다. 이 이야기에 울림이 있었다. 우리는 쉽게 성공하고 싶어한다. 가능하면 짧은 시간 내에,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목표를 이루고 싶어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쌓이고 쌓인다. 하지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매일 매일 꾸준히 해 나가야 어느 순간에 꿈에 그리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꼭 그 순간을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분명한 사실..
나는 최근 사기를 당했다. 홍콩 주식을 통해 2개월 내에 300% ~ 500%의 수익을 올려주겠다며 3천만원을 투자하라고 했다. 그 전에 단타 형식으로 (홍콩 주식의) 꽤 여러 종목에서 고수익을 내는 경험을 하게 해줬다. 이런 경험을 한 나는 캐피탈에서 3천만원을 대출 받았고, 사기꾼에게 고스란히 입금해줬다. 수익금을 돌려받으려고 했더니, 입금 받을 내 계좌가 도용된 의심이 있다며 내 투자금액을 전부 동결시켜버렸다. ('계좌 동결'이라는 전문용어를 써서 반항할 의지를 꺾으려는 것 같다.) 애초에 투자가 이루어진 플랫폼(앱)은 가짜였다.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와이프를 통해 알게됐다. 의심스러운 문자를 주고 받는 나의 핸드폰을 뒤져본 와이프는 절망하며, '사기꾼들에게 당한 것 같다. 알아보니 돈은 전..
아빠는 시골의 집배원이었다. 쌀과 감 농사를 짓던 부모님은 우리 삼 남매가 자라면서 점점 많은 돈이 필요했다. 아빠는 농번기가 아닐 때는 공사장에서 막노동도 하셨는데, 하루는 공사 현장에 높게 쌓인 건축자재(벽돌로 기억한다)가 쓰러지면서 아빠의 얼굴을 덮쳤다. 코뼈가 부러지고 볼이 심하게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셔서 응급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주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던 아빠의 모습은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이후 아빠는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셨고, 엄마의 권유로 매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집배원을 시작했다. 1994년, 아빠가 35살이었고 내가 10살 때의 일이다. 아빠는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이 되면서 당신의 삶의 모습이 획기적으..